반닫이에는 무엇을 넣어 두었을까
반닫이는 옷을 개어 넣고 중요한 문서를 간수하며 윗면에는 이불을 얹던 조선시대의 나무 궤입니다. 집안 형편과 쓰임에 따라 옷장이자 귀중품 수납함 역할을 했고, 지역마다 생김새가 달랐습니다.
반닫이의 쓰임
안방에서는 반닫이에 의복을 넣고 윗면에 이부자리를 얹었습니다. 책과 두루마리 문서, 제사에 쓰는 제기를 간수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모든 반닫이가 이 모든 용도로 쓰인 것은 아니며, 누가 어느 방에서 무엇을 보관하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랐습니다.
장과 농을 마련하기 어려운 집에서는 반닫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혼수로도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지역별 양식
반닫이는 지역에 따라 나무와 금속 장식, 몸체 비례와 짜임이 달랐습니다. 강화·평양·박천·밀양·제주처럼 지역 이름을 붙인 양식이 있고, 금속판에 구멍을 뚫어 무늬를 낸 데서 나온 ‘숭숭이 반닫이’ 같은 이름도 있습니다. 두 방식의 이름이 겹치므로 모두 별개의 종류로 셀 수는 없습니다.
강화반닫이는 옷과 옷감, 제기를 보관했습니다. 내부에 선반이나 서랍을 둔 예가 있고, 금속 장식에는 호리병·박쥐·태극 등이 나타납니다. 평양반닫이는 크고 높은 몸체와 많은 금속 장식이 특징이며, 옷을 넣고 두꺼운 이불을 얹어 썼습니다. 내부 윗부분에 작은 서랍 세 개를 둔 예도 있습니다. 박천반닫이는 구멍을 뚫어 무늬를 낸 무쇠 장식이 두드러져, 같은 북부라도 평양과는 모습이 다릅니다.
밀양반닫이는 비교적 낮고 넓습니다. 경상도 반닫이가 대체로 나뭇결을 드러내는 데 비해 밀양 양식은 무쇠 장식을 비교적 많이 썼고, 국화 모양 못머리와 달 모양 손잡이도 보입니다. 옷을 담아 안방 윗목에 두고 이불을 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주반닫이는 서책과 문구, 유기와 제기 같은 살림을 보관했습니다. 금속 장식이 장흥·해남 등 서남해안 양식과 닮았다는 연구도 있어, 섬의 가구를 육지와 단절된 전통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금속 장식의 기능
반닫이 앞면의 쇠붙이는 장식이면서 부품이었습니다. 경첩은 위쪽 문판을 여닫게 했고, 모서리 금속은 나무 이음새를 보강했습니다. 자물쇠 주변 금속판은 자주 닿는 부분의 마모를 줄였습니다. 여기에 꽃이나 기하학 무늬를 더하면서 가구마다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사진은 서로 다른 박물관 소장품 네 점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강화반닫이(서울역사021990), 국립중앙박물관의 제주궤(건희4556), 전라도 반닫이(건희4539), 평안도 숭숭이 반닫이(건희4630)이며, 제주궤는 박물관 소장품 명칭을 따랐습니다.
가구의 구조와 장석, 문양은 그대로 두고 배경만 밝은 아이보리색으로 통일했습니다. 개별 소장품의 차이를 지역 전체의 특징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출처 및 기준 정보
2026-10-09T22:20:00+09:00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역사박물관 · 소장품 ↗서울역사박물관 ·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 소장품 ↗강화반닫이(서울역사021990). 실제 소장품 사진의 배경만 아이보리색으로 정리했습니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제주궤(건희4556). 실제 소장품 사진의 배경만 아이보리색으로 정리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전라도 반닫이(건희4539). 실제 소장품 사진의 배경만 아이보리색으로 정리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평안도 숭숭이 반닫이(건희4630). 실제 소장품 사진의 배경만 아이보리색으로 정리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