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가지와 주판, 손으로 숫자를 셈하던 도구
조선 사람들은 작은 막대를 늘어놓거나 나무알을 밀어 셈을 했습니다. 막대인 산가지는 조선 말기까지 산학의 기본 계산 도구였고, 주판은 상거래 계산에 쓰였습니다. 산가지 한 묶음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시대 주판을 통해 두 도구의 원리를 살펴봅니다.
산가지 놓는 법
산가지는 대나무나 나무 등으로 만든 가느다란 막대로, 산목이라고도 합니다. 같은 막대라도 놓는 자리와 방향에 따라 나타내는 수가 달라졌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일·백·만의 자릿수는 세로로, 십·천·십만의 자릿수는 가로로 놓았습니다. 상황에 따라 방향을 바꾸기도 해 규칙이 하나로 고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사전은 한국에서 산가지가 조선 말기까지 산학의 기본 계산 방법으로 쓰였다고 설명합니다. 사진 속 산가지에는 숫자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수는 막대를 배열하는 약속으로 정해졌습니다.
조선시대 주판의 구조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 신수1113에는 조선시대 주판이 들어 있습니다. 박물관은 산반이라고도 부르는 이 도구가 상거래 등의 계산에 쓰였다고 소개합니다. 산가지가 막대를 펼쳐 놓는 방식이라면, 주판은 알을 꿴 막대를 나무틀 안에 모은 도구입니다.
주판은 가운데 가로대를 기준으로 위아래 알의 값이 다릅니다. 윗알 하나는 5, 아랫알 하나는 1을 나타냅니다. 알의 수는 주판마다 다르며, 이 유물은 막대마다 위쪽에 2개, 아래쪽에 5개가 있습니다.
알의 위치
정면 사진에는 나무틀과 가로대, 알의 배열이 드러납니다. 비스듬히 찍은 사진에서는 일부 알이 가운데 가로대 쪽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같은 유물에서 알을 움직여 수를 바꾸는 방식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산가지 사진에는 막대와 보관 주머니가 함께 담겼습니다. 결과만 적는 종이와 달리 두 도구에는 숫자를 바꾸는 손동작의 흔적이 남습니다.
놀이 도구로 쓰인 산가지
산가지는 계산 외에 놀이에도 쓰였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흩어진 산가지 더미에서 다른 막대를 건드리지 않고 하나씩 빼내는 놀이 등을 소개합니다.
계산할 때는 배열의 약속을 따랐고, 놀이에서는 주변 막대가 움직이지 않도록 손을 조심스럽게 썼습니다.
출처 및 기준 정보
2026-10-15T08:05:20.458Z
한국학중앙연구원 · 산가지 ↗한국학중앙연구원 · 산가지놀이 ↗한국학중앙연구원 · 수학 ↗국립중앙박물관 · 산반 및 곰방대 ↗한국저작권위원회 공유마당 · 주판 ↗공공누리 · 제1유형 ↗조선시대 주판의 정면. 가운데 가로대 위에는 알 두 개, 아래에는 다섯 개가 놓인 구조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산반 및 곰방대」 신수1113.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촬영일 미상. 비율을 유지해 가로 1600픽셀로 축소.
조선시대 셈 도구인 산가지와 보관 주머니.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산가지 / 산목」(미디어 aaa32c18).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촬영일 미상. 파일 수정 없음.
같은 주판을 비스듬히 본 사진. 정면 사진과 달리 몇몇 알이 가운데 가로대 쪽으로 옮겨져 있어, 알의 위치가 달라진 모습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신수1113,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촬영일 미상. 비율을 유지해 가로 1600픽셀로 축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