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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식을 갈아 끼니를 만들던 맷돌

맷돌은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 곡식을 가루로 바꾸던 도구입니다. 돌로 먹거리를 가공해 온 긴 역사와 가정·절에서 끼니를 준비하던 손일을 짚어 봅니다.

신석기시대의 갈돌과 갈판

곡식이나 열매를 돌로 가는 일은 둥근 맷돌보다 오래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울 암사동과 부산 가덕도 등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갈돌과 갈판을 소개합니다. 넓적한 판 위에서 긴 돌을 앞뒤로 밀어 재료를 가는 도구로, 주로 채집한 열매를 가공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회전식 맷돌과는 다른 도구입니다. 다만 단단한 먹거리를 잘게 만드는 일이 오래전부터 생활의 일부였음을 보여줍니다.

맷돌의 구조와 종류

맷돌은 위아래 두 돌 사이에서 곡물을 갈아 가루를 내는 도구입니다. 윗돌 구멍에 재료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갈린 재료가 밖으로 나옵니다.

작은 풀매는 옷감에 먹일 풀을 쑬 쌀이나 잣죽·깨죽 재료를 갈 때도 썼습니다. 강원 산간에는 나무맷돌이, 제주에는 네 사람이 함께 돌리는 큰 맷돌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같아도 크기와 재료, 쓰임이 달랐습니다.

두부를 만드는 과정

전통 방식으로 두부를 만들 때는 물에 불린 콩을 맷돌에 간 뒤 끓이고 걸러 콩물을 얻었습니다. 여기에 응고제를 넣어 굳히고 눌러 물을 빼면 두부가 됩니다.

맷돌을 돌릴 때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에 든 숟가락으로 콩을 넣었습니다. 갈린 콩은 아래 함지에 모였습니다.

숟가락으로 콩을 넣으며 맷돌을 돌리는 모습. 갈린 콩은 아래 함지에 모인다. 촬영연도 미상.

회암사지의 대형 맷돌

맷돌은 절의 취사 시설로도 쓰였습니다. 양주 회암사지의 맷돌 두 점은 큰 돌 함지와 아랫돌을 화강암 한 덩어리에 새겼습니다. 가까이에서 대형 수조도 함께 발굴돼 이곳은 취사 관련 공간으로 해석됩니다.

국가유산청은 제작 시기를 회암사가 번성한 조선 초기로 추정합니다. 사진 속 커다란 받침은 같은 원리가 많은 사람의 끼니를 준비하는 데 더 큰 규모로 쓰였음을 보여줍니다.

양주 회암사지의 맷돌 자료사진. 앞의 생활용 맷돌과 다른 유적의 사례이며 촬영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출처 및 기준 정보

2026-10-09T06:17:52.099Z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유산청 ↗국립중앙박물관 ·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갈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