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기는 흙을 구워 만든 저장·발효 용기예요. 기벽에 생긴 미세한 기공 때문에 안팎으로 기체가 이동할 수 있어 오래전부터 ‘숨 쉬는 그릇’으로 불렸습니다.
한국 문화·생활·음악·역사 이야기 | DISCOVER | 나우히트 · 13
한국 고속도로 휴게소는 화장실만 들르는 곳보다 ‘작은 여행 정거장’에 가까워요. 큰 휴게소에는 식당·간식·지역 특산품·주유소가 한곳에 모여 있습니다.
장승은 통나무나 돌에 사람 얼굴을 새겨 마을 입구나 길가에 세운 전통 표지물이자 신앙 대상이에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경계와 길을 알리고 마을을 지키는 역할을 함께 했습니다.
서울 지하철 승강장의 스크린도어는 선로 추락 사고를 막기 위한 안전장치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미세먼지·소음·냉방 효율까지 바꾼 도시 인프라가 됐습니다.
전통 한옥에서는 나무 살에 창호지를 발라 빛을 부드럽게 들이고 실내 환경을 조절했습니다. 한지는 단순히 유리가 없던 시대의 대체재가 아니라 종이의 물성이 건축 기능으로 쓰인 재료예요.
1990년대 삐삐는 보통 숫자만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발음, 숫자 모양, 말장난을 섞어 숫자를 하나의 언어처럼 썼습니다. 아래 숫자를 보면 당시의 연애, 약속, 우정, 술자리까지 보입니다.

맛동산 반죽은 공장에서 국악을 듣는다
과자에게 음악을 들려준다는 말이 광고처럼 들리지만 실제 제조 공정 이야기입니다. 맛동산은 반죽을 장시간 발효하는 스낵이고, 해태제과는 2010년부터 이 과정에 국악을 활용해 왔습니다.
요즘 결혼식 답례품을 떠올리면 먹거리나 작은 선물을 생각하지만, 1990년대에는 신랑·신부의 이름과 결혼 기념 문구를 넣은 공중전화카드를 주문해 손님에게 나눠주기도 했습니다.
청소시간에 빗자루질만 한 게 아닙니다. 1980년대 국민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책상을 밀어놓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마른 걸레와 고체 왁스로 나무 바닥을 직접 문질러 광을 냈습니다.

‘웬지’가 더 익숙해 보여도, 정답은 ‘왠지’
한국인도 자주 멈칫하는 맞춤법입니다. ‘왠지’만 따로 외우면 헷갈리지만, 이 말이 어디서 왔는지 보면 금방 기억됩니다.

버스가 출발할 때 왜 ‘오라이~’라고 외쳤을까?
1970~80년대 서울 버스에는 요금을 받고 승하차를 돕는 안내양이 있었습니다. 승객이 다 탔는지 확인한 뒤 차체를 두드리며 ‘오라이~’라고 외치는 것이 출발 신호였습니다.
통학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서울시는 1969년 2월부터 학생만을 위한 시영버스 20대를 운행했습니다. 지금의 통학버스와는 달리 도시 대중교통 정책 안에서 운영된 전용 버스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