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밤은 소비로만 완성될까, 서울의 일상을 다시 읽다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10월호의 야간경제 칼럼은 도시의 밤을 매출과 관광객 수만으로 평가하는 시각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편안한 밤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글입니다.
서울문화재단 《문화+서울》 10월호의 야간경제 칼럼은 도시의 밤을 매출과 관광객 수만으로 평가하는 시각에 의문을 제기합니다. 편안한 밤이 무엇인지 다시 묻는 글입니다.
나우히츠 편집실 · undefined
불을 밝힌 상점과 늦게까지 문을 여는 식당은 도시의 밤에 활기를 더합니다. 그러나 도시의 저녁이 늘 더 많은 소비와 더 늦은 귀가로 평가될 필요는 없습니다.
서울연구원 우영진 연구위원은 서울문화재단 2026년 10월호 칼럼에서 야간경제를 경제활동의 연장으로만 보는 관점을 문제 삼습니다. 집에서 쉬는 시간, 가족과 보내는 시간, 동네를 조용히 걷는 시간도 밤의 삶에 포함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좋은 밤의 도시에는 가게 수만큼 안전한 보행로와 적당한 조명, 쉴 자리가 중요합니다. 이는 칼럼을 바탕으로 한 나우히트의 해석이며, 특정 정책의 효과를 측정한 결론은 아닙니다.
반닫이는 옷을 개어 넣고 중요한 문서를 간수하며 윗면에는 이불을 얹던 조선시대의 나무 궤입니다. 집안 형편과 쓰임에 따라 옷장이자 귀중품 수납함 역할을 했고, 지역마다 생김새가 달랐습니다.
안방에서는 반닫이에 의복을 넣고 윗면에 이부자리를 얹었습니다. 책과 두루마리 문서, 제사에 쓰는 제기를 간수하기도 했습니다. 다만 모든 반닫이가 이 모든 용도로 쓰인 것은 아니며, 누가 어느 방에서 무엇을 보관하느냐에 따라 역할이 달랐습니다.
장과 농을 마련하기 어려운 집에서는 반닫이가 그 자리를 대신했습니다. 혼수로도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반닫이는 지역에 따라 나무와 금속 장식, 몸체 비례와 짜임이 달랐습니다. 강화·평양·박천·밀양·제주처럼 지역 이름을 붙인 양식이 있고, 금속판에 구멍을 뚫어 무늬를 낸 데서 나온 ‘숭숭이 반닫이’ 같은 이름도 있습니다. 두 방식의 이름이 겹치므로 모두 별개의 종류로 셀 수는 없습니다.
강화반닫이는 옷과 옷감, 제기를 보관했습니다. 내부에 선반이나 서랍을 둔 예가 있고, 금속 장식에는 호리병·박쥐·태극 등이 나타납니다. 평양반닫이는 크고 높은 몸체와 많은 금속 장식이 특징이며, 옷을 넣고 두꺼운 이불을 얹어 썼습니다. 내부 윗부분에 작은 서랍 세 개를 둔 예도 있습니다. 박천반닫이는 구멍을 뚫어 무늬를 낸 무쇠 장식이 두드러져, 같은 북부라도 평양과는 모습이 다릅니다.
밀양반닫이는 비교적 낮고 넓습니다. 경상도 반닫이가 대체로 나뭇결을 드러내는 데 비해 밀양 양식은 무쇠 장식을 비교적 많이 썼고, 국화 모양 못머리와 달 모양 손잡이도 보입니다. 옷을 담아 안방 윗목에 두고 이불을 얹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제주반닫이는 서책과 문구, 유기와 제기 같은 살림을 보관했습니다. 금속 장식이 장흥·해남 등 서남해안 양식과 닮았다는 연구도 있어, 섬의 가구를 육지와 단절된 전통으로만 보기는 어렵습니다.

반닫이 앞면의 쇠붙이는 장식이면서 부품이었습니다. 경첩은 위쪽 문판을 여닫게 했고, 모서리 금속은 나무 이음새를 보강했습니다. 자물쇠 주변 금속판은 자주 닿는 부분의 마모를 줄였습니다. 여기에 꽃이나 기하학 무늬를 더하면서 가구마다 표정이 달라졌습니다.
사진은 서로 다른 박물관 소장품 네 점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의 강화반닫이(서울역사021990), 국립중앙박물관의 제주궤(건희4556), 전라도 반닫이(건희4539), 평안도 숭숭이 반닫이(건희4630)이며, 제주궤는 박물관 소장품 명칭을 따랐습니다.
가구의 구조와 장석, 문양은 그대로 두고 배경만 밝은 아이보리색으로 통일했습니다. 개별 소장품의 차이를 지역 전체의 특징으로 일반화할 수는 없습니다.


2026-10-09T22:20:00+09:00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국립중앙박물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서울역사박물관 · 소장품 ↗서울역사박물관 ·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 소장품 ↗국립중앙박물관 · 소장품 ↗강화반닫이(서울역사021990). 실제 소장품 사진의 배경만 아이보리색으로 정리했습니다. 출처: 서울역사박물관.
제주궤(건희4556). 실제 소장품 사진의 배경만 아이보리색으로 정리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전라도 반닫이(건희4539). 실제 소장품 사진의 배경만 아이보리색으로 정리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평안도 숭숭이 반닫이(건희4630). 실제 소장품 사진의 배경만 아이보리색으로 정리했습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한국에서는 식사를 마치면 “잘 먹었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음식을 먹기 전에 하는 “잘 먹겠습니다”와 짝을 이루는 짧은 인사로, 한 끼를 마련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전하는 말입니다.
나우히츠 편집실 · 2026-10-15
“잘 먹겠습니다”는 식사를 시작하기 전에, “잘 먹었습니다”는 식사를 마친 뒤에 하는 감사 인사입니다. 한국어 교육기관 Talk To Me In Korean도 두 표현을 이렇게 구분합니다. 앞의 말은 앞으로 잘 먹겠다는 뜻이고, 뒤의 말은 잘 먹었다는 뜻입니다.
두 인사가 한 끼의 시작과 끝을 나눕니다. 식사 뒤의 인사는 음식에서 그 자리를 마련한 사람으로 눈길을 돌립니다.
식탁에 음식이 오르기까지의 과정을 다 알기는 어렵습니다. 누가 재료를 손질했고, 무엇을 먼저 익혔고, 언제 불을 줄였는지 몰라도 됩니다. 짧은 인사는 그 과정을 설명하지 않고, 한 끼가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만 짚습니다.
값을 치렀다고 수고를 알아보는 일이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계산으로 끝나는 자리도 있고, 한마디를 더 건네고 싶은 자리도 있습니다. 그 말은 의무보다 마음에서 나올 때 자연스럽습니다.
고마움을 전하려고 모든 요리를 칭찬할 필요는 없습니다. 맛에 점수를 매기는 말과 한 끼를 차리고 나눈 시간을 인정하는 말은 하는 일이 다릅니다. 느낀 만큼만 말하면 됩니다.
인사가 설거지를 대신하지는 않습니다. 식탁을 치우거나 다음 끼니를 맡을 때 그 말은 구체적인 배려가 됩니다. 마지막 숟가락을 내려놓은 뒤, 서로의 수고를 알아보는 순간이 한 끼를 마무리합니다.
2026-10-15T07:08:43.881Z
Talk To Me In Korean · Level 1 Lesson 12, before/after-meal phrases ↗Talk To Me In Korean · 20 Essential Korean Phrases, lessons 7–8 ↗
조선 후기에 유행한 책거리 그림에는 책과 함께 꽃병과 그릇, 과일이 등장합니다. 당시 사람들이 아끼던 물건과 바라던 삶을 담은 정물화입니다.
책거리는 책을 중심으로 도자기와 문방구, 꽃과 과일 등을 함께 그린 그림으로 조선 후기에 유행했습니다. 인천시립박물관은 그 배경으로 청나라의 장식장 그림을 꼽습니다. 책을 중시한 정조는 궁중 화원을 뽑는 시험에 책거리를 출제했습니다.
책 곁의 물건들은 빈자리를 채우는 장식만이 아니었습니다. 조선 후기 상류층의 책거리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도자기와 청동기 등도 그려졌습니다. 학문을 가까이하려는 태도와 진귀한 물건을 모으는 취향이 한 화면에 담긴 것입니다.
책거리는 점차 민간으로 퍼지면서 출세와 부귀, 평안을 바라는 마음도 담게 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홍산465는 여덟 폭 책거리 병풍입니다. 책과 꽃병, 그릇이 폭마다 나뉘어 있어 병풍 전체와 한 폭의 세부에서 각기 다른 구성이 드러납니다.
함께 실은 신수11431은 별개의 책거리 작품으로, 쌓인 책과 꽃 핀 나무, 여러 기물이 한 화면에 모였습니다. 마지막 사진은 박물관이 별도로 촬영한 홍산465 한 폭의 세부입니다. 홍산465의 제작 시기는 소장품 안내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책거리 병풍(홍산465) 실제 작품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원래 비율 유지.
낮은 굽과 훤히 열린 발등, 살짝 들린 앞코. 고무신의 윤곽에는 옛 신발의 모양과 공장에서 신발을 만들기 시작한 시대가 함께 남아 있습니다. 비 오는 날에도 신던 생활용품은 한때 갖고 싶은 새 신이었고, 오늘날 디자이너에게는 색을 더하는 바탕이 됐습니다.
고무신의 모양은 고무라는 재료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남성용은 가죽신인 갖신을, 여성용은 신목이 없는 전통 신인 당혜의 한 종류를 본떴습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복식 해설도 여성용 전통 신 운혜와 고무신의 닮은 점을 짚습니다.
앞부분이 살짝 올라가는 곡선은 조선시대 신발에서도 보입니다. 공장에서 만든 고무신에도 익숙한 신발의 윤곽이 이어졌습니다. 폭이 넓고 앞이 둥근 것부터 가늘고 코가 솟은 것까지 모양은 다양했습니다.

고무신은 일제강점기인 1910년대 말부터 1920년대에 걸쳐 널리 퍼졌습니다. 일본에서 들어온 제품이 시장을 열었고, 수요가 커지면서 한반도 안에서도 생산이 늘었습니다. 1922년 서울 종로에 세워진 조선고무공업소가 그 예입니다.
생산의 중심은 경성(지금의 서울)과 평양, 부산이었습니다. 경성과 평양에서는 한국인 업주의 비중이, 부산에서는 일본인 업주의 비중이 컸습니다. 고무신의 역사는 시골의 추억이자 도시의 공장과 기술자, 상표를 걸고 경쟁한 가게들의 역사입니다.
볏짚을 엮은 짚신은 쉽게 닳고 물기를 머금었습니다. 고무신은 물이 덜 스며들고 오래 신을 수 있었습니다. 맑은 날 신던 신을 비가 오면 나막신으로 갈아 신어야 했던 생활에서 이 차이는 컸습니다.
고무신은 남녀가 평소 바깥을 오갈 때 신는 신발로 자리 잡았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해인사 자료사진에는 승방 앞에 벗어 둔 흰색과 검정 고무신이 줄지어 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우리역사넷이 소개한 정비석의 1937년 소설 『성황당』에서 순이는 흰 고무신을 얻고 신었다 벗었다 하며 기뻐합니다. 지금은 소박해 보이는 신발이 당시에는 귀한 물건이었음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고무신에는 오래 신는 실용성과 곱게 차려입고 싶은 마음이 함께 담겼습니다. 비단신이나 가죽신에서 이어진 윤곽을 공장 제품으로 누리게 되면서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변화가 생겼습니다.
고무신의 모양이 모두 같지는 않았습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다른 자료사진에는 넓고 둥근 검정 신과 가느다란 흰 신, 붉은 배색을 넣은 신이 함께 나옵니다. 오늘의 컬러 고무신이 색 없던 물건에 처음 색을 입힌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1960년경부터 운동화가 대중화되고 구두가 일상에 자리 잡으면서 고무신의 비중은 줄었습니다. 한때 갖고 싶던 새 물건은 익숙한 생활용품을 거쳐 옛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물건이 됐습니다.

괄호프로젝트는 2019년 우성화학과 함께 PVC 소재의 ‘뉴칼라 고무신’을 내놓았습니다. 당시 공식 펀딩에서는 세 가지 색을 선보이며 청바지와 스커트에 맞춘 옷차림을 제안했습니다. 2026년 10월 확인한 공식 제품 페이지에는 페일바나나, 에메랄드, 버건디, 에덴그린, 코랄 리프, 퍼플 로즈, 올드글로리레드 등 일곱 색이 올라 있습니다.
익숙한 곡선과 열린 발등은 그대로 두고 색과 함께 입는 옷을 바꿨습니다. 새 재료에 옛 신발의 윤곽을 담았던 고무신은 이제 그 윤곽이 다시 디자인의 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2026-10-09T11:21:15.541Z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고무신 자료사진과 생활 변화 ↗한국학중앙연구원 · 고무신 원본 이미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콘텐츠 이용안내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고무신 형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고무신 보급과 생산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조선고무공업소 ↗괄호프로젝트 · New Color Gomusin 2019 ↗괄호프로젝트 · 뉴칼라 고무신 공식 제품 페이지 ↗한복에 흰 고무신을 맞춰 신은 AI 연출 장면. 특정 브랜드의 실제 제품 사진은 아닙니다.
여러 색의 고무신 AI 디자인 콘셉트. 실제 판매 색상이나 특정 상품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해인사 승방 앞에 벗어놓은 고무신.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원자료 설명에 따른 장소이며, 촬영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첫 두 장은 AI 제작 착용·컬러 시안입니다. 역사 자료나 실제 판매 제품 사진은 아닙니다.
말린 명태인 북어는 먹거리이면서 집을 짓는 의례에도 쓰였습니다. 오늘날 물고기 모양의 액막이 장식에는 집안의 평안을 바라는 뜻이 담겼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상량고사 기록에는 지붕 마룻대를 올릴 때 북어와 실타래, 돈 등을 매다는 풍습이 나옵니다. 상량고사는 집짓기의 큰 공정을 마친 것을 기념하고 앞으로의 복을 비는 자리였습니다.

‘액막이’는 나쁜 일을 막는다는 뜻입니다. 명태 모양 소품은 이 바람을 작은 장식으로 표현합니다. 구미보건소가 2025년 공개한 만들기 수업에서는 천 물고기와 실, 방울을 엮은 도어벨을 만들었습니다.
기사의 이미지는 수업 현장 사진이 아닙니다. 북어에 명주실을 묶은 장면과 현대 목제 물고기 장식을 각각 연출한 AI 재현 이미집니다.
집짓기 의례의 북어와 오늘의 도어벨은 같은 물건이 아닙니다. 다만 음식으로 익숙한 생선이 의례와 장식에도 쓰였습니다. 문 앞에 건 작은 물고기는 집안에 별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은 문화적 표현입니다.
한옥 문 위에 작은 북어와 명주실을 매단 AI 재현 장면. 실제 의례 현장 사진은 아닙니다.
목재 물고기·흰 명주실·종을 함께 연출한 AI 디자인 시안. 실제 상품 촬영이 아닙니다.
AI로 연출한 재현 이미지입니다. 실제 의례나 판매 상품 촬영 사진이 아닙니다.

매듭과 술로 꾸민 노리개 가운데에는 바늘을 넣어 다니는 바늘집 노리개가 있었습니다. 바느질 도구를 몸에 지니던 생활 습관이 장신구로 남은 것입니다.
노리개는 한복 저고리의 고름이나 치마허리에 다는 장신구입니다. 위쪽 걸개나 끈으로 옷에 고정하고, 장식과 술이 아래로 늘어지게 찼습니다. 술은 길게 드리운 실 장식을 말합니다.
바늘집 노리개는 가운데 장식에 바늘을 보관하는 용기를 넣은 것입니다.
자주 쓰는 바늘을 쉽게 꺼내 쓰려는 실용적 목적이 장식과 결합했습니다. 국가유산진흥원에 따르면 바늘집은 천·금속·가죽·종이 등으로 만들었고, 녹을 막으려고 안에 머리카락이나 분가루를 넣었습니다. 장신구 안에 실제 바느질 도구를 보관한 셈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백동 바늘집 노리개(증6526)는 조선시대 유물로 전체 길이 32.5cm다. 별도 소장품인 파란 바늘집 노리개(증6666)는 34.5cm로, 분홍 매듭과 술이 달렸습니다. 이름의 ‘파란’은 색이 아니라 금속 표면을 꾸미는 법랑 기법을 뜻합니다.
함께 실은 서울역사박물관의 근대 수바늘집과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민속박물관의 칠바늘집은 재료와 형태가 다른 바늘집입니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천 바늘집의 위쪽을 덮개, 아래쪽을 바늘을 꽂는 부분으로 설명합니다.
사진에는 열린 내부나 바늘이 보이지 않으며, 두 바늘집을 한복에 단 모습도 아닙니다. 아래로 늘어진 술은 실 장식이며 바늘을 넣는 부분이 아닙니다.
2026-10-09T15:59:00+09:00
국립중앙박물관 ↗공공누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www.kh.or.kr ↗국립중앙박물관 ↗공식 소장품 상세 ↗공식 소장품 상세 ↗공식 소장품 상세 ↗현대 한복에 노리개를 매다는 모습을 연출한 창작 이미지.
AI로 제작한 콘셉트 이미지입니다. 실제 유물 사진이나 특정 소장품의 복원 모습이 아닙니다.
노릇한 반죽 속에 녹은 설탕. 겨울 거리의 간식 호떡은 오랜 세월 한국에서 반죽과 속재료를 바꿔 가며 변해 왔습니다.
철판 위에서 둥근 반죽을 누르면 가장자리가 얇게 퍼집니다. 겉은 노릇하게 익고 안에서는 설탕이 녹습니다. 호떡은 밀가루 반죽에 달콤한 소를 넣어 굽는 한국의 길거리 간식입니다.
호떡은 1920년대에 이미 한국 서민들이 즐기는 음식이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당시 신문에는 호떡과 호떡집을 소재로 한 수필과 단편소설이 실렸습니다. 사 먹는 끼니이자 간식이던 호떡이 일상과 함께 글 속에도 등장한 것입니다.
다만 이 기록이 오늘날 설탕 호떡이 처음 만들어진 시기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이후 호떡은 한국의 거리에서 여러 형태로 바뀌었습니다. 기름 두른 판에 굽는 방식, 단 소에 계피 향을 더하는 방식, 반죽에 찹쌀을 섞거나 채소를 넣는 방식이 생겼습니다. 이름은 같아도 반죽과 속재료에 따라 식감이 달라집니다.
부산의 씨앗호떡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설탕의 단맛에 씨앗과 견과류의 고소함과 씹는 맛을 더했습니다. 한국관광공사는 씨앗호떡을 호박씨와 땅콩, 아몬드, 호두 등을 넣는 부산의 대표 길거리 간식으로 소개합니다.

익숙한 맛 안에 변화가 쌓여 있다는 점이 호떡의 재미입니다. 반죽 두께와 속재료가 달라지고, 도시와 가게마다 저마다의 방식이 더해졌습니다. 겨울 거리의 호떡 한 장에는 만드는 사람과 먹는 사람의 일상이 겹쳐 있습니다.

2026-10-09T06:17:52.099Z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Wikimedia Commons · Korea.net/KOCIS ↗Creative Commons ↗KOCIS Korea ↗한국관광공사 ↗노릇하게 구운 호떡. 도톰한 가장자리와 철판에 닿아 생긴 갈색 무늬가 보입니다. 2010년 자료사진.
기름을 두른 철판 위에서 호떡이 익어 갑니다. 집게 옆에는 반죽을 납작하게 누르는 누르개가 놓여 있습니다. 2013년 자료사진.
갈라진 씨앗호떡 사이로 속이 보입니다. 종이컵에 담아 손에 들고 먹는 모습입니다. 2012년 자료사진.
맷돌은 콩을 갈아 두부를 만들고 곡식을 가루로 바꾸던 도구입니다. 돌로 먹거리를 가공해 온 긴 역사와 가정·절에서 끼니를 준비하던 손일을 짚어 봅니다.
곡식이나 열매를 돌로 가는 일은 둥근 맷돌보다 오래됐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울 암사동과 부산 가덕도 등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나온 갈돌과 갈판을 소개합니다. 넓적한 판 위에서 긴 돌을 앞뒤로 밀어 재료를 가는 도구로, 주로 채집한 열매를 가공한 것으로 해석됩니다.
회전식 맷돌과는 다른 도구입니다. 다만 단단한 먹거리를 잘게 만드는 일이 오래전부터 생활의 일부였음을 보여줍니다.
맷돌은 위아래 두 돌 사이에서 곡물을 갈아 가루를 내는 도구입니다. 윗돌 구멍에 재료를 넣고 손잡이를 돌리면 갈린 재료가 밖으로 나옵니다.
작은 풀매는 옷감에 먹일 풀을 쑬 쌀이나 잣죽·깨죽 재료를 갈 때도 썼습니다. 강원 산간에는 나무맷돌이, 제주에는 네 사람이 함께 돌리는 큰 맷돌이 있었습니다. 이름은 같아도 크기와 재료, 쓰임이 달랐습니다.
전통 방식으로 두부를 만들 때는 물에 불린 콩을 맷돌에 간 뒤 끓이고 걸러 콩물을 얻었습니다. 여기에 응고제를 넣어 굳히고 눌러 물을 빼면 두부가 됩니다.
맷돌을 돌릴 때는 한 손으로 손잡이를 잡고 다른 손에 든 숟가락으로 콩을 넣었습니다. 갈린 콩은 아래 함지에 모였습니다.

맷돌은 절의 취사 시설로도 쓰였습니다. 양주 회암사지의 맷돌 두 점은 큰 돌 함지와 아랫돌을 화강암 한 덩어리에 새겼습니다. 가까이에서 대형 수조도 함께 발굴돼 이곳은 취사 관련 공간으로 해석됩니다.
국가유산청은 제작 시기를 회암사가 번성한 조선 초기로 추정합니다. 사진 속 커다란 받침은 같은 원리가 많은 사람의 끼니를 준비하는 데 더 큰 규모로 쓰였음을 보여줍니다.

2026-10-09T06:17:52.099Z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공공누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국가유산청 ↗국립중앙박물관 ·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무엇을 갈았을까 ↗맷테와 짚으로 엮은 맷방석을 갖춘 맷돌. 촬영연도 미상.
숟가락으로 콩을 넣으며 맷돌을 돌리는 모습. 갈린 콩은 아래 함지에 모입니다. 촬영연도 미상.
양주 회암사지의 맷돌 자료사진. 앞의 생활용 맷돌과 다른 유적의 사례이며 촬영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빨래를 마친 옷감은 다듬이돌 위에 올려 방망이로 두드렸습니다. 다듬이질은 옷감의 결을 펴고 윤기를 내는 마무리 손질이었습니다.
다듬이질은 세탁한 옷감을 방망이로 두드려 정리하는 작업입니다. 풀 먹인 천의 올을 펴고 표면을 고르게 다듬어 다시 입을 수 있게 했습니다. 길쭉한 다듬이돌이 천을 받치고, 단단한 나무 방망이가 옷감에 힘을 전했습니다.
조선시대 생활서 『규합총서』에는 비단과 무명, 모시 등 옷감별로 다듬는 방법이 따로 적혀 있습니다. 의복 관리는 빨래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다듬이질은 옷감의 종류와 상태를 살피는 기술이었고, 시간과 노동이 많이 드는 일이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다듬이돌 신수13090은 조선시대 유물로, 길이 55cm의 낮은 돌 받침입니다. 사진에 방망이나 작업하는 사람은 담기지 않았습니다. 잘 손질된 한복 뒤에는 세탁 이후에도 이어진 이런 손질이 있었습니다.
반짇고리는 바느질에 필요한 물건을 한데 모아두는 그릇입니다. 바늘과 단추를 나눠 담는 작은 칸, 종이를 겹쳐 만든 몸체, 옻칠 위에 붙인 자개에는 옷을 짓고 도구를 챙기던 생활 방식이 담겨 있습니다.
옷을 지으려면 바늘과 실 외에도 치수를 재는 자, 옷감을 자르는 가위, 손가락을 보호하는 골무, 옷감을 다루는 인두와 다리미가 필요했습니다. 반짇고리는 이런 작은 도구와 헝겊을 모아두는 정리 용품이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전통 옷을 짓는 일인 침선을 설명하면서 바느질 도구와 함께 반짇고리·바늘집·실패 같은 정리 도구를 소개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조선시대 반짇고리 신수13353에는 안쪽 모서리에 작은 칸이 있습니다. 박물관 설명에 따르면 바늘과 단추를 따로 넣는 공간입니다. 실과 천을 놓는 넓은 바닥에 작은 부속이 섞이지 않게 자리를 나눈 것입니다.
이 유물은 높이 9.2cm, 한 변 36.5cm의 나무 상자로, 검은 옻칠 위에 자개를 붙였습니다. 낮고 열린 형태와 작은 구획이 정리 기능을 드러냅니다.
반짇고리가 모두 화려한 칠기는 아니었습니다. 종이·나무·대나무 등 여러 재료로 만들었습니다.
종이 공예에서는 종이를 여러 겹 붙여 두껍게 만드는 방법을 반짇고리 같은 작은 생활용기에 썼습니다. 남은 종이와 헌 종이도 재료가 됐고, 겉에 색지를 붙여 꾸미기도 했습니다.
첫 사진의 신수13352도 조선시대 나무 반짇고리지만, 작은 칸이 있는 신수13353과는 다른 유물입니다. 높이 9.7cm, 한 변 38.5cm이며, 검은색과 붉은색 옻칠에 자개 장식을 더했습니다.
안쪽 둥근 테두리에는 바위·나무·물고기를, 바깥 면에는 꽃과 새·대나무·바위를 배치했습니다. 두 상자는 바느질이라는 일상의 일이 보관 방식과 공예 취향으로 이어졌음을 보여줍니다.
2026-10-09T02:18:51.599Z
국립중앙박물관 · 반짇고리 신수13352 ↗국립중앙박물관 · 신수13352 원본 이미지 ↗국립중앙박물관 · 반짇고리 신수13353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침선장/바느질 ↗![[상암동비디오] 버스를 그대 품안에](https://i.ytimg.com/vi/pmv6Z-YBPEY/maxresdefault.jpg)
교통카드가 나오기 전 서울의 버스 승객은 작은 금속 토큰이나 종이 회수권을 미리 사서 탈 때마다 한 개씩 냈습니다. 이 작은 승차권에는 요금을 받던 노동자의 처지, 학생 할인, 도시 교통이 하나로 이어져 간 과정이 남아 있습니다.
토큰은 동전 모양으로 만든 버스 승차권입니다. 승객은 판매소에서 미리 산 토큰을 가지고 다니다 버스 요금으로 냈습니다. 어디서나 쓰는 돈과 달리 정해진 교통수단의 요금만 대신했습니다.
종이 회수권도 함께 쓰였습니다. 여러 장을 한 묶음으로 사서 한 번 탈 때 한 장씩 냈습니다. 출근길과 등굣길에는 돈뿐 아니라 표를 챙겼는지도 확인해야 했습니다.

서울에 버스 토큰이 도입된 것은 1977년입니다. 당시 버스에는 승객의 승하차를 돕고 요금을 받는 차장이 있었습니다. 토큰은 흔들리는 차 안에서 거스름돈을 계산하는 일을 줄이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서울의 박물관·시정 자료는 요금을 빼돌렸다는 의심을 받은 여성 차장들이 부당한 몸수색을 당하던 문제도 도입 배경으로 설명합니다. 토큰 도입으로 그런 일이 곧바로 사라졌다는 뜻은 아닙니다.
서울생활사박물관에 따르면 초기 일반용 토큰은 황동으로 만들어 누런빛이 났고, 학생용은 양백이라는 합금으로 만들어 은백색을 띠었습니다. 적용 요금의 차이를 물건의 종류로 구분한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1979년 5월 학생용 토큰이 종이 회수권으로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국민학생, 중·고등학생, 대학생용이 따로 있었지만 1990년부터 대학생 회수권이 없어져 대학생도 일반요금을 냈습니다.

서울의 토큰 도입·폐지 연도는 서울의 역사이며, 한국 전체의 일정과 같지 않습니다. 다른 도시에도 토큰과 회수권이 있었습니다. 부산시는 2026년 7월 버스 역사 전시를 안내하며 지역의 토큰과 회수권을 전시품으로 소개했습니다.
여러 도시에 같은 종류의 승차권이 있었다고 해서 다른 도시에서 바꿔 쓸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서울에서는 1996년 교통카드가 등장했고 토큰은 1999년 폐지됐습니다. 토큰에서 지금의 티머니로 하루아침에 바뀐 것은 아닙니다. 티머니 연혁에 기록된 2004년 7월은 서울 신교통카드시스템이 시작된 시점이고, 2007년 7월에는 수도권 통합요금제 정산서비스가 이어졌습니다.
바뀐 것은 승차권의 재질만이 아닙니다. 여러 교통수단의 이용 기록을 남기고 요금을 연결해 계산하는 체계가 함께 발전했습니다.
토큰은 한 번 탈 때 내는 물건이었지만 충전식 교통카드는 잔액을 담아 다시 충전해 여러 번 씁니다. 통합요금 체계에서는 이용 기록도 요금 계산에 쓰입니다.
박물관에 남은 토큰과 회수권은 표를 미리 사서 주머니에 넣고 탈 때 꺼내던 예전의 동작을 보여줍니다. 카드나 휴대전화로 요금을 내는 오늘의 방식은 이런 물건과 제도의 변화를 거쳐 만들어졌습니다.
2026-10-09T02:11:52.173Z
Tmoney ↗Tmoney · history ↗YTN Science · 상암동비디오 ↗YTN Science · YouTube ↗서울생활사박물관 ↗서울특별시 · 서울사랑 ↗서울역사아카이브 ↗서울의 학생용 버스 토큰 세 개. 서로 다른 표면과 빛깔을 볼 수 있어요.
학생용 버스 토큰 한 점의 무늬와 글자. 앞의 모음 사진과 다른 개별 상세 사진이에요.
일반 승객용 버스 토큰 한 점. 학생용과 다른 요금 구분에 쓰였어요.
